너에게 나를 보내던 기억

 

너에게 나를 보내던 기억

손에 연필을 쥐고 한 자 한 자 종이 위에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종이도 생각해가며 골랐고 필기 도구도 가려
서 사용했다.물론 종이 위에 펜으로 상대를 생
각하며 편지를 쓸 때는 더 많은 정성을 들였다.
노트 같은 곳에 먼저 썼다가 문장을 손본 뒤에
편지지에 옮겨 적기도 했고 잉크가 닮긴 만년
필로 필체에 생동감을 더하기도 했다.

더러 성격이 깔끔한 사람은 조심히 써내려간
편지의 마지막 문장에서 한 글자만 틀려도 힘들
게 써온 것을 찢고 새로운 편지지에 처음부터
다시 옮겨 적기도 했다. 편지를 쓰는 일이 그저
글로 상대에게 안부를 묻고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
하며 우정과 사랑을 담는 제법 격식 있는 소통
의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그 시절엔 정말이지 다양
한 디자인의 편지지가 있었고,온갖 향수 냄새가
나는 볼펜도 있었다.종이 위에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마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
이다. 돌아보면 정말 극성이었구나 싶기도 하나
그런 편지를 보내고 받던 시절이 그립다.

이렇듯 정성을 다해 써내려간 편지를 어울리
는 봉투에 담은 뒤엔 수시로 인상되는 우표값
을 확인한 뒤 역시 제값의 우표를 사서 봉투에
붙여야 했다.보통 집에 남아 있던 우표를 서랍
에서 찾아 대충 붙여 보내기도 했지만 다양한
디자인의 우표가 판매되던 때엔 상대의 취향
까지 고려해 우표를 골라 붙였다.이렇듯 편지를
쓰는 일은 상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쓰고 정성을 다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그래
서였겠지만 그 편지를 보내고 얼마후 마당 끝
대문 우편함에서 상대로부터 온 답장을 발견하
게 됐을 때의 기쁨이 아주 컸다.

중.고교시절 서울에 혼자 남아 자취와 하숙을
이어갈 때 평소 말씀이 적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매달 내게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당신의 청소년기 고군분투했던 경험들과
삶을 통해 얻은 지혜들을 편지지에 빼곡하게 적
어 보내주셨다.아버지의 곧고 힘찬 필체도 내겐
놀라웠지만 편지지에 울퉁불퉁 고스란히 눌려져
있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그 문자의 흔적
들이 내 손끝에서 마음을 더 뜨겁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 당신을 설명하시
고 소개해 주셨으며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내주
신 셈이다. 그 소중한 편지들을 모두 와이셔츠
상자 같은 곳에 담아 보관했는데 종종 삶의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이 오면 지도를 펼치듯 그 상자
를 열어 아버지의 편지를 만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 우리들이 사용하는 전자메일(e-mail)은
신속하게 멧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
은 있지만 손편지를 주고 받았던 시절에 맛볼 수
있었던 다채로운 감동은 없어 보인다.글로 상대
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에서는 같지만 아무래
도 상대에 대한 내 생각을 펜을 들고 근육을 움
직여서 종이에 옮겨적는 행위는 예술가가 자신
의 생각을 특정한 재료를 이용해 손으로 형상화
해내는 것과 같은 발신자의 고유함이 있다.그
필체와 필적이 기록되는 시간은 온전히 수신자
의 가슴에 닿는다.내 생각에 글로 우정과 사랑을
정성스럽게 선물하는 것은 손편지 만한 것이
없다.그래서 나는 가끔이기는 하나 가까이 사는
지인들에게 친필로 편지나 카드 쓰기를 즐겨하
며 받는 것도 참 좋아한다.

오늘 모처럼 연필을 들고 누구에게든 마음을
한 번 써내려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