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알튀세르의 ‘호명'(號名)이론과 주체의 탄생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총리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대(對) 한국 경제제재에 돌입하였다.
이에 우리정부는 반도체 핵심소재의
국산화에 국가적 지원을 약속하고 국민들은
일본제품불매운동을 전개하고있다.
일련의 사태를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일본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일본 자위대가
전쟁이 가능한 군대로 명문화 하려는
아베총리의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루이 알튀세르는 소쉬르의 언어학,
라캉의 심리학,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막스주의 철학자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학교, 종교, 군대, 미디어 등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여
대중들에게 사고의 준거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대중들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데올로기를 실천해 나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 없이는 대중은
현실을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튀세르가 강조하는 개념이
바로 ‘호명(Interpellation)’이다.
알튀세르의 주체는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주체가 아니다. 관계속에서
바뀌는 유동적 주체이다.
비유하자면 김춘수의 시 <꽃>의 한구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에서 ‘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시체인 ‘꽃’을 기호인
“꽃”으로 호명하는 순간 비로소 “꽃”이란
주체가 탄생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아버지라는 호명에,
직장에서는 김과장이라는 호명에,
친구사이에서는 ㅇㅇ이라는 호명에,…
그의 사고와 행동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마치 연극배우가 어떤 배역을 맡느냐
어떤 가면을 쓰느냐에 따라 얼굴이 달라 지듯이.
또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항상-이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
라고 말한다.
예컨데 “너는 한국인이야.”라고 불러 주는
호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너는 (한국인이니) 이걸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이다.
여기서 ‘항상-이미’ 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구의 아들이고 한국인이라는 등의
호명이 항상-이미 정해진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불리어질 호칭은
항상-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너는 한국인이야’ 라고 호명하고,
그에 대해 우리가 “예” 라고 대답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게 말 잘 듣는
주체든, 말썽 피우는 주체든,
삐딱한 주체든 간에 말이다.
연일 신문, 방송, 인터넷커뮤니티등에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등뒤에서
우리을 부르고 있다.
“당신! 한국인 이지!”
뒤돌아 볼것인가?
모른척 할것인가?
답은 ‘항상-이미’ 정해져있다. “예”
뒤돌아보든, 모른척하든 이미 반응(지각)했으니까.
단지 말 잘듣는 주체(한국인)인지,
말썽피우는 주체인지, 삐딱한 주체인지의
차이일뿐이다.
*전 다른 호명에는 좀 삐딱한편인데
이번 호명에는 착실하고 말 잘 듣는 주체로
변할까 합니다.^^
-글/이병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솝-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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