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라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라고
믿어 왔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어쩌다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보니,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다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인중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겨 온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3일, 5일, 6일, 9일…..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심보선-

* [탈무드]에 따르면
천사들은 자궁 속의 아기를
방문해 지혜를 가르치고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 모든 것을 잊게 하기 위해

천사는 쉿, 하고 손가락을
아기의 윗입술과 코
사이에 얹는데,

그로 인해
인중이 생겨난다고 한다.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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