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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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ang Hee Ahn


엄마 사라지지 마

-한 설희-

엄마는 외딴섬에 삽니다. 서울 이문동의 세평 남짓한 작은 방이 엄마가 딛고 있는 세계의 전부입니다

아흔 두해를 살았습니다. 말많은 4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부대낀 삶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마모됐지요. 엄마는 외도로 집을 나간 아버지를 한평생 기다렸습니다. 2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시더군요. 오랜 기다림의 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혹시 엄마도 아버지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엄마를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2010년 10월 27일, 카메라로 엄마와 처음 눈을 맞춰습니다. 젊은시절 잠깐 익혔던 사진을 4년전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프레임안에 들어온 엄마는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있었지요. 어쩌다 몸을 일으키면 앙상한 팔과 다리가 날카롭게 렌즈에 부딪쳐습니다.
“늙은이를 찍어 뭣하냐.” 철컥거리는 셔터소리에 엄마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엄마를 기록하는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경기도 일산 집에서 한 번은 이문동에 들렀습니다. 셋째 남동생 내외가 일을 나가면 엄마는 검은 방에 홀로 남습니다
딸이 차려준 밥상 앞에서 어렵게 숟가락을 뜨고, 쪼그려 앉아 양치질을 하고, 성경을 읽고 교복 입은 아들의 옛날 사진을 바라봅니다. 딸은 그 작은 세계를 놓치지 않으려 셔터를 눌렀습니다.

하루는 경대위에 못보던 화장품세트를 발견했습니다
“며늘애한테 부탁했어” 며칠전 엄마사진이 실린 잡지를 보여드렸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카메라 앞에서 성질을 내던 양반이 우아한 손짓을 해 보이고
입매에도 힘을 줍니다. 구십이 넘어도 예뻐 보이고 싶은 그녀는 여자였습니다.

*****

올 초에는 엄마 사진을 모아 전시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찾았습니다. 한 중년 여성은 주저앉아 울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바깥 출입이 어려운 엄마는 전시회에 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줄어듭니다. 곰살맞은 구석이란 찾아볼 수 없는 맏딸이었습니다. ***2012년

< 사진/안상희>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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