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기형도>

기형도(奇亨度)
(1960년  ~ 1989)는
대한민국의 시인 겸 언론인이다.
유고 시집으로 《입 속의 검은 잎》,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있다.

출생
1960년 3월 13일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기도 옹진군 송림면
(現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사망
1989년 3월 7일 (28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에서 뇌졸중으로 병사

직업
작가, 언론인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종교
천주교
(세례명: 그레고리오)

활동기간
1984년 ~ 1989년

장르
시문학

부모
기우민(부), 장옥순(모)

형제
기만도(형)
기웅도(형)
기세도(누나)
기애도(누나)
기순도(누나)

기형도가 살던 집

1960년 3월 13일 옹진군
연평도에서 공무원인 기우민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기우민의 고향은
황해도였고 그곳에서 교사를
하였으나 한국 전쟁 중 연평도로
피난하여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연평도에서는
면사무소 공무원을 하였다.
간척 사업에 손을 대었다가
크게 실패하고 1965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주했다.

소하리의 집은
아버지가 직접 지은 것이다.
근처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안양천을 따라 둑방길이
이어져 있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소하리의 이러한 풍경은 그의 시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살던 마을에는
안개가 자주 끼었고 안개 속을
뚫고 노동자들이
일터로 향했다.

기형도가 살던 곳은
소하리였지만 학교는
서울로 통학하였다.

서울의
시흥초등학교,
신림중학교를 거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9년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이후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다.

시장에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 역시
기형도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유성호는
윤동주를 닮고 싶어한  기형도의
시작 활동에 녹아 있는 어린 시절은
윤동주의 동화 속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절박한 삶의
모습이었다고
평한다.

기형도는
녹녹치 않은
살림을 걱정하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5년
공장을 다니던
바로 위의 누나가 사망하였다.

몸져 누운
아버지와 일찍 죽은 누이는
기형도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다.

누이가
죽은 뒤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녔으나
대학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연세문학회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연세대학교 학보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하였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1981년
휴학하고 방위로
소집되어 안양에서
근무하였다.

이 시기
경기도 안양의
문학동인지 《수리》에
참여하였다.

1983년 복학하여
〈식목제〉로 《연세춘추》가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었다.

졸업 전인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문학사상》,
《현대문학》, 《한국문학》과 같은
문학지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파고다극장에서
심야 영화 영화를 관람하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였다.

기형도는
평소에도
혈압이 높았으며
자신이 오래살 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형도는
종종 심야 동시상영
극장을 자주 다녔고, 전날에도
작가 김태연과 다음날 자정에
극장에서 보자고
통화하였다.

당시 파고다극장은
《뽕 2》와 《폴리스 스토리》를
연이어 상영하고 있었지만, 《뽕2》 상영을
마친 뒤 극장 안을 정리하던 경비원이
발견하여 다음날 동아일보는
기형도가 《뽕2》를 관람하다
사망하였다고 기사를
내보냈다.

파고다극장은
건물은 그대로 있지만
고시원으로
변했다.

기형도는
장례를 치른 후
안성의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

묘비에는
세례명 “그레고리오”가
새겨져 있다. 기형도의 무덤은
문학을 동경하고 시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성지다.

2년 뒤에는
그의 아버지도 그의
옆에 묻혔다.

시인의 요절과
죽음의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시집은 이후
기형도 신화를
빚어냈다.

같은 해 5월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발간되었으며, 유고시집의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했다.

김현은
당시 중앙일보에
월간 시평을 쓰고 있었는데
1988년 6월에 기형도의 시를 평론한
원고를 기고하였다.

문화부에서 월간 시평을
담당하고 있던 기형도는
자신의 시에 대한 평론을 차자 자신이
정리할 수가 없어 김현에게
전화를 걸어 원고 수정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김현은
《입 속의 검은 잎》의 해설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을 썼으며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은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
라고 썼다.

김현 역시
1년여 뒤 사망하였다.

1990년 산문을 모아
《짧은 여행의 기록》이
출간되었고 1994년 미발표

유고 시를 모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나왔다.
1999년 《기형도 전집》이
정리되어 나왔다.

2017년 광명시는 기형도문학관을 개장하였다.

작품목록

문학사상 :
〈어느 푸른 저녁〉(1985년 12월호),
〈植木祭〉(1987년 4월호), 〈여행자〉,
〈장미빛 인생〉(1987년 9월호),
〈흔해빠진 독서〉〈노인들〉(1988년 5월호),

〈바람의 집—겨울 版畵 1〉,
〈삼촌의 죽음—겨울 版畵 4〉
(1988년 11월호)

문학과사회 :
〈정거장에서의 충고〉,〈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1988년 겨울호)

시집 편집
《입 속의 검은 잎》 (198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1994)
산문집 편집
《짧은 여행의 기록》 (1990)
전집 편집
《기형도 전집》 (1999)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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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 to do Right

Learn to do Right

learn
to do right!

Seek justice,
encourage
the oppressed.

Defend
the cause of
the fatherless,

plead
the case of
the widow.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will
eat the best
from the land;

Isaiah 1: 17-19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사야 1: 17-19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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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았으니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
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
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1960-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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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는 시

마음을 비우는 시

차창
밖으로

산과
하늘이
언덕과 길들이
지나가듯이

우리의 삶도
지나가는
것임을

길다란 기차는
연기를 뿜어대며
길게 말하지요

행복과 사랑
근심과 걱정
미움과 분노


지나가는
것이니

마음을
비우라고


소리로
기적을 울립니다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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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Remains Faithful

He Remains Faithful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everything
in them —

the
LORD,
who remains
faithful
forever.

He
upholds
the cause
of the oppressed

and
gives food
to the hungry…..

the
LORD gives
sight to
the blind,

the
LORD lifts up
those who are
bowed
down,

the
LORD loves
the righteous.

The
LORD
watches over
the alien

and

sustains
the fatherless
and the
widow,

but
he frustrates
the ways of the
wicked.

Psalms 146:6-9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
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시편1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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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민들레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
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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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함께 사는 법

불안과 함께 사는 법

3월입니다.

분명 봄의 시작이겠지만 올해는 마치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계절처럼 느껴집니다.
거리 곳곳으로 짙은 안개처럼 불안의 기운이
스며있고 지나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외투와
얼굴에서도 봄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서부터 기관지가 예민해 겨울철 잔기침을
달고 사는 저는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기침을 참느라 고역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공간
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줄까 염려해서고
따가운 시선을 받는 느낌도 불편해서 입니다.
그래서 늘 가방에 따뜻한 물이 담긴 보온병을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마십니다. 아무래도
기침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기침이 진정되지 않으면 지하철에서 잠시
내렸다가 다음 차편을 이용합니다.

미국 거리에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마스크를 쓸 정도로 병세가
나쁘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집에 머물러야 한다
는 사회적 인식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상황이 더 나빠지면 이곳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게 될지 모
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
절히 바랄 뿐입니다.

불안의 원인에 대한 심리학적 견해는 아주 복잡
하고 다양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즉각
적이거나 물리적인 위협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
다는 앞으로 발생할 일에 대한 막연한 추측과 예
상 때문에 생겨난 심리적 반응으로 설명합니다.
실제가 없는 유령 같은 무엇인가에 짓눌려 고통
을 받는 상태인데 특히 스스로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 때문에 그 불안은 더 깊어
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이 불안 때문에
유전학적으로 38세에 그치는 인간의 평균 수명
을 거의 두 배까지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인류는 불안을 떨쳐내려고 죽어라 발버둥치면
서 동시에 그 불안에 힘입어서 재난, 재해, 전염
병 등의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을 꾸준히 발전시켰습니다. 사실상 인류의
역사는 숱한  불안에 맞서 싸워온 지난한 기록이
자 둘이 함께 걸어온 공존의 기록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의 불안은 사람의 힘으로 극복
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
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은 인류가 피해 갈 수 없는 명백한 ‘한계
상황’이기에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은 없습니다. 어느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류에게 만일 불안이 전혀 없었다면 욕망을 채우
기 위해 무한 폭주했을 것이고 결국엔 커다란 비극
을 낳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불안에 무조건 굴복하고 스
스로  압도당해 꼼짝 못 하는 삶도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그려낸 허상 때문
에 우리의 삶 전체가 질식되게 만들어선 안 됩니
다. 불안은 그 원인을 찾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는 우리에게 약이 되지만
불안에 온통 잠식되는 경우엔 치명적인 독이 되
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필요를 말하고
감염자들과 멀어지길 바라고 스스로를 지
켜낼 방법을 모색하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기꺼이 위험지역으로 발걸음
을 옮겨 확진자들을 돌보려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그런 의료진들을 돕겠다고 응원하
고 후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백신
을 만들기 위해 위험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실험실의 연구원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느
끼는 불안이 어찌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다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서
불안의 원인을 찾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
해 당당히 맞서고자 하는 숭고한 마음을
봅니다. 여전히 보석처럼 단단하며 반짝이
는 인류의  희망을 봅니다. 저와 여러분들
도 이들의 노력에 관심을 갖고 응원하며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긴긴 겨울 동안 우리 모두가 간절히 기다렸던
3월입니다,  속히 불안의 짙은 안개로  뒤덮인
거리가 아닌 희망과 역동의 빛으로 충만한
참된 봄의 거리 위에 다시 서고 싶습니다.

우울한 기분으로 나섰던 산책길에서 잠시 어린아
이처럼 지상으로부터 힘차게 한 번 펄쩍 뛰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뛰고난 뒤에 역시 몸은 무거웠으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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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is great all th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