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
내가 너의 그늘이 되기로 한 날
부서지는 봄날이었다
자목련 나무 아래
그 붉은 입맞춤
잊혀지지 않는 추락
한 때가 한 날 한 시였음을
오지 않을 그때
지지 않을 꽃
하얀 목련은 가슴이었고
붉은 너는 마음이었다
이제 맹세가 사라진밤
너의 눈시울이
내 마음을 다시 불붙였다
하지 못한 말 남긴다
사랑해.
글/ 이 기철
I Chose You
You did not choose me,
but I chose you and appointed you
to go and bear fruit — fruit that will last.
Then the Father will give you
whatever you ask in my name.
This is my command:
Love each other.
John 15: 16-17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함이로라
요 15; 16-17
The Flower
by Kim Chun-soo (1922-2004)
Before I called her name,
she was nothing
more than a gesture.
When I called her name,
she came to me
and became a flower.
Like I called her name,
will someone please call my name
that suits my light and fragrance?
I, too, long to come to her
and become her flower.
We all long to be something.
You, to me, and I, to you,
long to become a gaze that won’t be forgotten.
Translated by
Chae-Pyong Song and Anne Rashid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출전: “김춘수 시선집” (민음사)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해설> – 정끝별·시인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지와 시안(詩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을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하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범속(凡俗)한 빈궁 속에서 세계의 아득한 끝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부르튼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기에, ‘아-‘ 하고 우는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바깥〉)!
<출처> 2008. 5. 1 / 조선일보
Be Glad
But let all who take refuge in you
be glad;
let them ever sing for joy.
Spread your protection over them,
that those who love your name
may rejoice in you.
For surely, O LORD,
you bless the righteous;
you surround them
with your favor as with a shield.
Psalm 5: 11-12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 5: 11-12
못 위의 잠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제비,
거리에선 아직 흙 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글/나희덕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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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ashing the Sesame
by Kim Jun-tae
At the corner of a farm where the mountain shadow descends, I thrash the sesame with Grandmother. In my eyes, Grandmother strikes the stick slowly. But I, the young one, want to go home before dark, and strike with all my strength. I find rare pleasure in thrashing the sesame– difficult to find in worldly affairs. Since I have lived in the city for almost ten years, it is an exhilarating thing to watch, even with one stroke, innumerable, white grains rushing out. I thrash bundle after bundle, whistling. When I am lost in thrashing, thinking that there might be many things that would rush out like sesame if you gleefully strike anywhere, Grandmother pitifully chastises me: “Honey, don’t thrash at the necks.”
Translated by Chae-Pyong Song and Anne Rashid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Originally published in Gwangju News, June, 2012)
Kim Jun-tae (1949- ) was born in Haenam, Jeollanamdo. He studied German literature at Chosun University. He made his literary debut in 1969 with the publication of “Thrashing the Sesame” and other poems in The Poet. His poetry collections include Thrashing the Sesame, I Saw God, The Rice Soup and Hope, Fire or Flower?, and Sword and Soil. He is known as the progressive poet of “Oh, Gwangju! The Cross of Our Nation!,” a poem about the Gwangju Uprising he published on June 2, 1980, in The Chonnam Daily. With the publication of this poem, the newspaper was forced to shut down, and he was laid off from his teaching at Chonnam High School. This poem has been acclaimed as the first poem that addressed the uprising. He is a protest poet committed to writing about ruined hometowns, national liberation, and the decolonization of culture.
From; ‘Korean Poetry in translation’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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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put My Hope
My soul faints with longing
for your salvation,
but I have put my hope
in your word.
My eyes fail,
looking for your promise;
I say, “When will you comfort me?”
Though I am like a wineskin in the smoke,
I do not forget your decrees.Psalms
119: 81-83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119: 8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