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PERISHABLE SEED


THE IMPERISHABLE SEED

Now that
you have purified
yourselves
by obeying
the truth

so that
you have
sincere love
for your brothers,

love
one another
deeply,
from the heart.

For
you have been
born again,

not of
perishable
seed,

but of
imperishable,

through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

1Peter 1: 22-23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 전서 1: 22-23

BIBLE/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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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먄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국-

‘집은 아직 따뜻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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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1


가정 1

핏줄
하나로도

별이 되고
달이 되며
해가 되는


하나로도

울타리 되고
세계 되며
우주 되는

온기와
사랑과
행복이

새어나오는
신비한
궁전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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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공해

문학의 공해

시를 쓰는 사람이 많다.
한 해에 발표되는 시가 2만 편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시단에는 여러 통로로
새로운 인원이 줄곧 들어선다.

이런 시단에서 한 가지 현상을 접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시를 ‘쓰는’ 데 관심이 그나마
높지만, 시 자체에 대해서는 공부나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 현상이다.

시란 무엇인지, 좋은 시가 갖출 요건,
나쁜 시가 나쁜 이유는 뭔지…
진지하게 따지고 익히는 이는 자주 볼 수 없다.
이런 풍토는 시와 시인은 늘어도 독자는 줄고,
문학적 성취, 숙성과 상관이 없다.

작품은 항상 어느 수준을 유지하여야만 한다.
아니 지금까지 생산된 것보다 더 좋아야 한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뻔한 소리, 남이 이미 다 말한 소리,
자신도 이미 여러 번 우려먹은 시시한 소리,
쓸데없는 말장난, 한 줄로 써도 될 것을
공연히 두 줄로 띄워놓는 일,

더럽고 음란한 말을
이유없이 서슴없이 하고는
자기가 마치 크게 자유를 신봉하거나

마음이 탁 트인 선구적 사상가인양
행세하는 일,

자기는 가난하니까 정직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니까 도둑놈이다
하는 식의 궁상,

되지도 않는 비유를 해놓고도
부끄러워 할 줄조차 모르는
뻔뻔스러움,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틀린 문장이나
온갖 단어의 조합 수준의 글을 써놓고는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의 출제자라도
된 듯한 착각들,

과연 무슨말을 하려는지 알수가 없는
잡글 수준의 허무맹랑한 글의 구성등,,,

이런 것들로 계속 지면을
그 분량을 늘려가는 식의 다작은 한 마디로

“문학의 공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이런 경우에 골탕먹는 사람들은
그저 그 속에서 무엇인가 건져보려는
선량한 독자들뿐이다.

절제는 술주정꾼에게만이 아니고
모든 종류의 천재에게도 엄숙히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이다.

모든 종류의 명성이 다 그러하듯이
글을 쓰는 사람이 누리는 명성이란 것 또한
지극히 허망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만도 현재
수천여 명이 훨씬 넘는 시인이 있으며,
이들 모두는 제각기 자신이 쓴 시가
다른 사람이 쓴 것보다 우수하다고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매일 꾸준히 시를 쓰고 있으며,
기회가 닿는 대로 발표도 하고,
그 발표한 것들이 모이기가 무섭게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출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가운데서
얼마만한 분량이 읽히고,
제대로 감상되며,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사랑을 받고 또 후세에까지 살아남아 있을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 본다면 그렇게
지금처럼 열불나게 써서 정신없이 발표하는
자신의 행위에 한 번쯤 회의를
느껴봄직도 한 일이다.

소동파(1036~1100) 하면
“적벽부”로 잘 알려진 송대의 시인이었다.

이 별로 길지도 않은 “적벽부”,
길게 늘여 인쇄해 보아야 2페이지 정도,
하지만 이는 중국 시문학사상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소동파가 죽은 후 그의 집에서
커다란 나무 궤짝 두 개가 나왔다고 한다.
열어 보니 “적벽부”의 초고, 즉 연습용
원고가 가득 들어 있었다고 전한다.

천년 전에 이미 소동파는 글쓰는 행위에
있어서 시공을 초월하여 가장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두 궤짝이나 되는
종이를 없애며 다듬고 또 다듬었다는 사실,,,,,

“적벽부”로 얻은 소동파의 불후의 명성이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소위 글쓰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싯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과연 하루에도 몇편씩 쓰는
다작이 좋기만 할까~~^^
또 하루에도 수개씩 글을 게시하는게
모두에게 얼마나 좋은 일 일지~~^^

다같이 한번쯤 생각해 볼 때입니다.

From: 雲亭 朴 來然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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